‘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흔히 역사를 신화에서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그리스 신화를 허구적인 가공물로 간주한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와 같은 초기 시인들이 신들의 계보와 기능, 형상을 창작하여 신화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 신화를 신뢰하지 않았고『역사』에서 그리스 신화를 중요한 소재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헤로도토스의『역사』에서 그리스 신화가 전연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가끔 여담을 위한 소재나 논지전개상의 근거로 신화를 활용하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한편으로 신화를 배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화를 활용하기 때문에, 역사와 신화에 대한 그의 입장이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신화들을 사례별로 고찰하여, 그의 역사서술과 신화와의 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헤로도토스의 신화서술에서 어느 정도 신화의 이야기를 구도를 갖춘, 9개의 유의미한 사례들을 추출하여 설명한다. 그 사례들은 이오 이야기, 에우로파 이야기, 포세이돈과 아테나의 아테네 수호신 경쟁 이야기, 디오니소스의 탄생과 양육 일화, 헤라클레스의 계보 이야기, 이집트에서의 헤라클레스의 기행(奇行) 이야기, 트로이전쟁과 헬레나의 행방 이야기, 에우로파를 찾기 위한 카드모스 항해 이야기, 카드모스 보이오티아 정착 이야기이다. 이들에 대해 헤로도토스는 신화의 내용을 부정하기도 하고(이집트에서의 헤라클레스 기행(奇行)), 그 내용을 수정하여 받아들이기도 하고 (에우로파 이야기, 트로이전쟁과 헬레나의 행방, 헤라클레스의 계보, 카드모스의 보이오티아 정착), 또 때로는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지 않은 채 그냥 이야기를 소개하기만 한다,(이오 이야기, 아테나와 포세이돈의 경쟁, 디오니소스의 탄생과 양육, 에우로파를 찾기 위한 카드모스의 항해). 이 다양한 대응 속에서도 헤로도토스는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가능한 한 탈신화화한 역사를 기술하고자 한다. 그는 기존의 그리스 신화에서 신적인 요소들을 배제했으며, 신화를 부정하거나 수정할 경우 나름의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자신의 풍부한 견문지식이나 현실적 타당성을 근거를 제시하여, 신화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것이다. 그가 특히 신뢰한 것은 이집트인들의 전승이었다. 하지만 그는 판단 근거가 부족한 경우에는 신화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그냥 이야기를 전달하기만 한다. 그의 이런 다양한 입장은 언뜻 보기에 이중적인 태도도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리스신화 서술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그가 기존의 신화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인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