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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hosin

Suhosin (Korean 수호신, meaning guardian-angel, pronounced 'su-ho-shin') is an open source patch for PHP and also a PHP extension. Patch and ext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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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s overview

Semantic Scholar uses AI to extract papers important to this topic.
2019
2019
설문대할망과 마고할미는 그 외형적 특성(거인 여신)과 행동(천지창조, 자연물 창조)의 유사성으로 인해, 각각의 독자적 연구가 진행될 때에도 항상 같이 언급되었다. 그 과정에서 혹자는 둘을 동일한 존재의 지역적 차이일 뿐이라 주장하였고, 누군가는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 논문에서 두 설화의 전승 양상을 비교ㆍ대조한 결과 설문대할망과 마고할미는 ‘거인창조신’이라는 특성은 동일하지만 ‘대모신’이라는 특성과 ‘수호신(마마신)’이라는 특성은 각자가 가진 고유한 특성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들을 진실하다고 믿고 그녀들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화의 형태로 이 이야기가 전승되었다. 하지만 설문대할망과 마고할미가 가진 특수한 능력이 인간들을 해친다고 판단하거나 혹은 그러한 능력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녀들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부정한 존재로밖에 인식되지 않았고 결국 전설로만 전승되었다. 한국에 전승되는 설화 내에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자신의 서사를 가진 여성(캐릭터)은 많지 않다. 이것은 전통 사회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살기보다 ‘딸 혹은 어머니’로 살았던 여성들이 실제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거의 없었음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국가를 건설하고 사회ㆍ문화 제도를 만들던 남신(男神)의 등장으로 그들의 서사가 많이 소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현재까지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설문대할망과 마고할미의 서사는 더욱 소중하다. 그들은 사람들을 위해 인간세계를 만들고 산천을 만들며 그들이 곡식을 먹고 살 수 있도록 들(野)을 만든다. 하지만 거인이며 창조적 행위를 하는 설문대할망과 마고할미가 이렇듯 외형도 닮고 하는 행동 또한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둘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외형이 비슷하다고 해도 그들은 엄연히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고, 고유한 특성을 가진 각각의 개체, 우리의 몇 안 되는 소중한 여신들이기 때문이다. 즉 ‘홍역, 천연두를 치료해주는 수호신(마마신)’으로 기능하는 마고할미와 ‘오백 명의 아들을 낳고 기르며, 아이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대모신’ 설문대 할망을 이제 각자의 이름으로 불러주고 그들의 특성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2015
2015
이 글에서는 항해를 둘러싼 신앙의 층위와 상호관련성에 대해 논의하였다. 항해는 ‘배로 바다 위를 이동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련의 과정이기 때문에 배, 포구, 바다가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즉, 항해를 하는 동안 선신신앙과 당신앙, 해신신앙이 유기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선신.당신.해신의 전승양상과 기능을 점검하고, 항해신앙이라는 틀에서 각각의 층위와 상호관련성을 고찰하였다. 먼저 배서낭으로 대표되는 선신(船神)의 유형과 금기, 기능을 주목하였고, 그 결과 항해와 관련하여 예지기능에 특화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는 당신(堂神)의 해역신적 기능에 대해 주목하였다. 해역신의 존재는 주로 서해와 남해지역에서 확인되었다. 연평도의 임경업장군, 부안 수성당의 개양할미, 해남의 땅끝의 갈산마을 당할머니, 남해의 최영장군 등이 대표적인 해역신으로 파악되었다. 이들 해역신은 풍어나 항해 등의 기능으로 특화된 상태였고 위력 또한 매우 강력했다. 끝으로 해신으로서 용왕의 위상과 기능을 확인하였다. 용왕은 해신을 대표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바다 외에도 지역의 수호신, 기자(祈子)의 대상, 풍농의 신, 수신(水神) 등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의례에서도 겉모습으로는 의례의 주신이지만, 실제 의례에서는 놀림의 대상이 되고 마을의 액을 가지고 멀리 떠나는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여 선신신앙, 당신앙(해역신앙), 해신(용왕)신앙을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신의 위력과 항해와의 관련성을 파악하였다. 결론적으로 해역신으로 확장되어있는 당신이 항해신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고 위력도 가장 강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용왕은 해신으로서 대표성은 유지할지라도 그 위력은 가장 약하고 항해와의 관련성도 미흡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4
2014
한국 문화 속에서 호랑이는 다양한 모습과 상징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호랑이 석상은 왕릉, 마 을, 사찰, 명당터의 풍수비보, 지역[대학]상징물 등 다양한 모습으로 고대에서 현대까지 전국에 걸쳐서 분포하고 있다. 이 논문은 현장사례를 중심으로 호랑이와 관련된 일곱 개의 동물석상의 명칭, 재질, 위치, 수량, 형태, 기능과 역할, 제작시기 등을 밝혀 보고자 했다. 호랑이와 관련된 석상의 명칭은 호석(虎石)ㆍ범바우ㆍ용호석ㆍ호랑이초석ㆍ개바위ㆍ코끼리상 등이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돌로 만든 호랑이 상이 대부분이다. 마을과 고을의 중앙이나 입구 에 위치한 호랑이 석상은 액을 막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풍수지리와 관련한 석상은 호랑이의 기운 이 너무 강해 그 기운을 누르거나, 제압하기 위해서, 명당 터를 표시하기 위해서, 명당 터를 발복시 키기 위한 문화적 장치로서 석상을 이용했다. 호랑이 석상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읽혀진다. 그림 속의 해학과 장승의 얼굴, 미륵의 위엄이 동시에 표현된 조형예술이다. 
2012
2012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흔히 역사를 신화에서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그리스 신화를 허구적인 가공물로 간주한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와 같은 초기 시인들이 신들의 계보와 기능, 형상을 창작하여 신화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 신화를 신뢰하지 않았고『역사』에서 그리스 신화를 중요한 소재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헤로도토스의『역사』에서 그리스 신화가 전연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가끔 여담을 위한 소재나 논지전개상의 근거로 신화를 활용하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한편으로 신화를 배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화를 활용하기 때문에, 역사와 신화에 대한 그의 입장이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신화들을 사례별로 고찰하여, 그의 역사서술과 신화와의 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헤로도토스의 신화서술에서 어느 정도 신화의 이야기를 구도를 갖춘, 9개의 유의미한 사례들을 추출하여 설명한다. 그 사례들은 이오 이야기, 에우로파 이야기, 포세이돈과 아테나의 아테네 수호신 경쟁 이야기, 디오니소스의 탄생과 양육 일화, 헤라클레스의 계보 이야기, 이집트에서의 헤라클레스의 기행(奇行) 이야기, 트로이전쟁과 헬레나의 행방 이야기, 에우로파를 찾기 위한 카드모스 항해 이야기, 카드모스 보이오티아 정착 이야기이다. 이들에 대해 헤로도토스는 신화의 내용을 부정하기도 하고(이집트에서의 헤라클레스 기행(奇行)), 그 내용을 수정하여 받아들이기도 하고 (에우로파 이야기, 트로이전쟁과 헬레나의 행방, 헤라클레스의 계보, 카드모스의 보이오티아 정착), 또 때로는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지 않은 채 그냥 이야기를 소개하기만 한다,(이오 이야기, 아테나와 포세이돈의 경쟁, 디오니소스의 탄생과 양육, 에우로파를 찾기 위한 카드모스의 항해). 이 다양한 대응 속에서도 헤로도토스는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가능한 한 탈신화화한 역사를 기술하고자 한다. 그는 기존의 그리스 신화에서 신적인 요소들을 배제했으며, 신화를 부정하거나 수정할 경우 나름의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자신의 풍부한 견문지식이나 현실적 타당성을 근거를 제시하여, 신화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것이다. 그가 특히 신뢰한 것은 이집트인들의 전승이었다. 하지만 그는 판단 근거가 부족한 경우에는 신화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그냥 이야기를 전달하기만 한다. 그의 이런 다양한 입장은 언뜻 보기에 이중적인 태도도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리스신화 서술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그가 기존의 신화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인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2011
2011
대만의 민간신앙은 발생부터 변화 발전과정에 이르기까지 대만개척사와 관련깊다. 일찍이 대륙 연해의 한족은 정치적·경제적 요인으로 해협을 건너 대만으로 이주 개척에 매진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예측불허의 해난사고에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보호신을 찾았다. 특히 마조·현천상제·수선존왕·사해용왕 및 총간공 등이 숭배를 받았다. 이중 마조신앙이 가장 흥성하며 현재 800좌 이상의 마조묘가 건립된다. 마조·왕야·토지공은 민간에서 숭봉하는 3대 신으로 이들에 대한 신앙 동기 및 신의 속성을 통해 대만의 지리환경과 민간신앙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대만의 민간신앙은 4단계 과정을 거쳐 변화 발전한다. 첫째, 신앙 분류시기로 초기 이민자들은 이익 쟁취를 위해 각기 향토신을 모신 묘우를 거점으로 무장전투를 벌려 신앙이 분류된다. 당시 사묘는 신앙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동향의 단결 집회장이었다. 둘째, 신앙 통속화 시기로 이민 생활이 점차 안정된 후 향토 색채와 언어의 장벽을 타파하고 점차 지방 수호신의 성격은 보편적인 신으로 바뀐다. 셋째, 신앙 동요의 시기로 일제는 사묘를 점령 대부분을 훼손했고, 황민화운동과 함께 대만의 장기 통치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본의 신도를 장려한다. 넷째, 신앙의 흥성 변혁 시기로 광복을 맞고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옮겨온 후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규정되며 민간신앙은 더욱 흥성 발전한다. 대만 민간신앙의 특색은 향토신 숭배, 불·도교가 혼합된 다신숭배, 새로운 신의 부단한 출현, 수호신 숭배, 가정신의 묘화이다. 묘우는 신앙의 중심지이자 신의 초자연력을 빌려 세인을 위해 봉사하는 공능을 지닌다. 제신의 주요 목적은 신에게 문복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묘우에서는 항상 각종 기도·허원·제사·천도·액막이·보운·재초법회를 거행하며, 목적은 민중의 각종 생존 곤란을 해결하고 현실 생활의 구체적인 이익과 화해를 구하는 한편 전통신앙·윤리도덕 정신을 계승한다. 묘우의 건축방식은 대칭 강구, 봉건계급, 안전 방어, 전통 미학의 성격을 지니며 한 당에 제신을 모시고 풍수지리를 고려하며 전통신앙·윤리도덕 정신을 계승한다. 구사초복의 방법으로 수패, 자패, 와장군, 길간, 도경, 미두고검 등이 있다. 숭배신은 자연신·도교신·통속불교신으로 나누며 서로 혼재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 지방신 대부분은 영혼숭배에 속한다. 현대인은 부단히 새로운 신을 창조하고 인멸시키는 한편 각각의 신이 지닌 고유 공능 외에 새로운 공능을 부여 점차 다양한 신직을 겸한 만능신으로 변모시킨다. 대만의 현대 민간신앙은 민간인의 종교단체로 광범위한 공익사업을 펼쳐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기도 하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전히 사사로운 기복적 성격이 한계성으로 남는다. 
1999
1999
민속문화재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 준 것이 아니다 그 사회 집단이 오랜 세월 동안 교류와 회천을 반복한 결과 그 토양에 알맞은 민속만이 적응되는 조건 아래서 싹트고 자라나 마침 내 그 민중, 사회 집단의 전통적인 삶에 배어 있는 유 · 무형의 것이 바로 민속문화재이기 때문이 다 또한 민속문화재는 지정학적으로 살펴보자연 입지적 조건의 한 반영으로도 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 문화를 이루어 내고 유지해 온 그 곳 주민의 성품이 반영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혹은 소박한 혹은 투박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령 제주도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돌하루방’(돌로 만들어진 할아버지의 뭇이며 제주도 수호신 의 상정인 석상)을 바롯한 무속사회의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는 신상(뼈쫓) 들을 보자 나무 · 산 · 바다 ? 바람 · 비 · 구름 ? 안개 등등의 자연현상에 부여된 신격(피輔)의 여러 모습들을 하 고 있다 획일적이지 않는 자유자재함 이것이 바로 민속문화재의 본 모습이다 우리 사회가 서두르고 있는 건설 산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민속문화의 뿌리를 알고 새 것을 찾는 슬기의 바탕 위에서 새로움을 만들어 낸다연 주민의 정서에 알맞은 그리하여 좀 더 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지난 날의 민속문화재가 새로운 사회의 인류문화에 기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우리 선조의 유산인 민속문화재의 특성을 오늘의 생활문화에 있어서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1998
1986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