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카프 비평의 내적 일관성이라는 비평사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팔봉과 임화의 비평 담론을 교차시켜 고찰한 시론(試論)적인 글이다. 새로운 텍스트와 콘텍스트 발굴에 힘입어, 이 글은 대중화논쟁 이후 만난 적이 없다고 이해되어 온 팔봉과 임화가 ‘다시 만나는’ 장면들을 재조명하고, 이를 토대로 두 비평가가 시차를 두고 공명하는 양상을 재구성한다. 팔봉과 임화가 앞선 텍스트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그것을 생산적으로 변주하는 과정을 연속성의 관점에 입각해 살펴보면, 팔봉을 단지 ‘문학주의자’로 규정하는 데는 많은 난점이 따르게 됨을 알 수 있다. 우선 예술적 실천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고유의 감성과 심리 형성을 주창한 러시아의 운동은 팔봉의 초기 비평 화두인 ‘감각의 변혁론’이 어디에 닿아 있는 것인지를 새로이 究明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후 내용형식논쟁과 대중화논쟁 등을 거치면서 팔봉은 의 볼셰비키 좌파 노선과 부르주아 문화계승론을 핵심으로 하는 레닌이즘을 오가며, 때로는 정연하지만 때로는 모순된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문학주의냐 정치주의냐가 아니라 레닌을 어떻게 전유하느냐가 팔봉과 회월 혹은 팔봉과 임화의 사유를 節合하는 비평적 고리였던 것이다. 1934년을 전후한 시점에 이르러 임화는 내용형식논쟁 당시에 제기되었던 팔봉의 형식론을 복기라도 하듯이 ‘문학은 추상적 논리에 의한 기록이 아니라 생생한 생활의 구체적 형상’을 의미한다는 신념을 피력하면서 형상론을 개진해나간다. 팔봉은 팔봉대로 임화의 형상론이 자신의 형식론의 계승자임을 공공연히 천명하였고, 임화는 임화 나름대로 팔봉을 당대의 일급 비평가로 상찬하며 열정적으로 형상의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카프 해산이라는 위기의 상황에서 많은 문인들이 카프의 조직론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특이하게도 임화는 조직론 대신 문학(본질)론과 형상론으로써 난국을 돌파하려 했다. 마침내 임화는 결성에서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카프가 오랜 기간 고민해 왔던 도식주의의 문제를 형상론을 통해 일단락 짓는데, 형상 자체가 예술가의 의식 형태와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라면 프로문학에 결핍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마르크스주의 이념 자체였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결론적으로 보아, 팔봉이 진정으로 우리 문학사의 ‘씨 뿌리는 사람’이었다면 1930년대 후반 임화의 비평이 그 씨앗 하나를 보여준 셈이다. 형상으로 개화한 형식의 씨앗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