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고는 신라 최초의 쌍탑가람인 사천왕사 쌍탑의 대내외적 발생 배경을 고구함과 동시에 그 미술사적 의의를 찾아 보았다. 쌍탑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 사료인 「歷代名畵記」에 나오고, 北魏시대 운강석굴의 釋迦ㆍ多寶 二佛竝坐像을 통해 신라에 앞서 중국에서 먼저 조성된 사례를 알 수 있으며 그 사상적인 배경은 법화경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쌍탑 발생의 대외적인 영향도 『法華經』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본다. 이는 삼국시대부터 신라 승려들에 의한 『법화경』의 저술활동, 황룡사 승려들의 조탑활동, 『법화경』 석경의 조성, 적산법화원 존속 등의 사실을 통해 『법화경』은 삼국시대부터 유입되었고, 통일기에도 널리 유행하였으므로 통일기의 쌍탑 조성에 사상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彩釉四天王像塼을 비롯한 사천왕사지 출토 유물에서 唐代의 특징이 나타난다는 점과 일본에서도 7세기 후반에 쌍탑가람이 조성되었다는 사실은 국제형식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쌍탑 발생의 신라적인 요소는 창건 배경이 되는 ‘신라 須彌山 사상’과 ‘護國聖所로서의 기능’에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明朗이 당군을 격퇴하기 위해 壇國址에서 행하였던 文豆婁秘法은 『灌頂經』, 『金光明經』, 『觀佛三昧海經』이 기본 경전으로 四天王신앙과 瑜伽佛敎가 결합된 복합적인 신라밀교의 특징을 나타낸다. 특히 『관정경』에는 五方神이 등장하는데 사천왕사 가람배치는 중앙의 금당을 중심으로 전방에 쌍탑지, 후방에 동서 단석지가 있는 오방의 배치이다. 이 문두루비법의 법회가 열렸던 단석지의 성격이 사천왕사 가람배치가 출현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천왕사에서만 나타나는 오방의 배치를 다른 쌍탑가람과의 조성 배경, 가람의 구성요소, 유구, 사역, 지대석, 기단비교를 통해 살펴 본 결과 쌍탑은 금당을 장엄하는 성격을 지니면서 통일기에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것은 금당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강조되기는 하였지만 불탑신앙도 계속 유지되었음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사천왕사 쌍탑은 통일신라시대 쌍탑가람이 출현하는 첫 출발지가 되었다는 점과 통일기 대칭미의 비조로서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그 미술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